글또 9기를 지원하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 삶의 지도'
글또 9기를 지원하는 첫 관문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 삶의 지도”를 되돌아볼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건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를 골자로 합니다.
글을 한 번 제대로 써보고 싶다!
일련의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이끌었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늘 하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개연성’….. 돌이켜보면 내가 벌인 일에는 늘 ‘개연성’이 부족했다.
삶의 지도를 기고하면서도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그 근거를 기록으로 남기면 향후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 완벽한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글을 마무리짓는게 쉽지 않았는데 글또에서 지원하는 그런 교육이 절실해서 지원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의 나
중학생 때까지는 수학, 영어, 사회, 역사를 좋아하고, 과학을 싫어했다.
과학은 어렵고 성적도 잘 안 나오는 데 반해 사회는 재밌다고 선생님에게 말한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 보면 부모님은 내심 이과로 진학하길 바라셨던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젊은, 사회 선생님이었다.
사탐을 좋아했던 나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따르면서 잘 챙겨주셨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선생님과 사이가 틀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어린 사춘기 마음에 이 일을 크게 담아두었던 나는
홧김에 이과로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문과로 진학하면 계속 그 선생님을 마주쳐야 하는게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땐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부모님의 희망 사항도 조금 반영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모습을 비춰보면 이 결정이 첫 시발점이자 전환점이었다. 아무런 대책없이 저지른 일이었다.
당장 대학은 가야 하니 잘할 수 있는 과학탐구 과목이 있어야 했다.
물리는 어려웠지만, 화학은 공부할수록 설렜다. 성적도 잘 나와서 화학부장도 맡았다.
그러다가 연애를 하면서 공부에 소홀했고, 재수, 삼수를 했다.
한창 어떤 기준을 가지고 대학을 진학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휘둘리기 딱 좋은 시기였다.
하나 확실했던건 화학을 전공하면 한 평생 재밌는 일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우리나라에서 자연과학은 찬밥이라더라. 많이들 약대 진학으로 방향을 돌린다더라. 하는 소식에
결국 화학과를 포기하고 산업공학과로 마음을 굳혔다.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부지런했던 20대 초반
산업공학에서 두각을 보이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생산관리같은 원론적인 과목을 공부하는건 어렵지 않았고, 데이터 분석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다.
데이터에서 숨은 규칙을 발견하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대학원을 진학해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자신은 또 없었다. 아버지 반대도 있었다.
그만큼 부족한 부분을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보완하려고 했다.
170학점으로 졸업하기까지 나는 그렇게 개발에는 뜻이 없는걸 확인했고 좋아하는 것이나 해야지 싶었다.
자연스레 취준 기간까지도 머신러닝, 딥러닝을 공부하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끝까지 우당탕탕
약 반 년 정도의 취준 끝에 몇 군데 원서를 넣어서 현재는 데브옵스 엔지니어로 재직하고 있다.
왜 갑자기 데브옵스냐하면…회사에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데이터 분석에 더욱 역량이 있는 동기가 그 업무를 맡고 있으니 회사의 안목이 맞았나 싶은게 다행이면서도
그래도 데이터 직군으로 준비하며 공부한 덕에 현재 업무를 하면서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다음 전환점은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쯤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번만큼은 뭔가 내 개연성 있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조금 더 데이터스러워도, 인프라스러워도, AI스러워도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공부중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건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이 자리를 빌려 진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 글또에 대단히 감사합니다.